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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전: 원한의 연못에 핀 두 송이 꽃

아주 먼 옛날, 평안도 철산 땅에 배무룡이라는 좌수(座首)가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이 있었으니, 언니는 장화(薔花), 동생은 홍련(紅蓮)이라 불렸다. 이름처럼 장화는 장미꽃같이 우아하고 기품이 넘쳤으며, 홍련은 붉은 연꽃처럼 화사하고 고왔다. 자매의 우애는 마을 전체에 칭송이 자자할 정도로 깊었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보살핌 아래 집안에는 늘 웃음꽃이 피어났다.

하지만 행복은 검은 구름처럼 한순간에 흩어졌다. 딸들을 끔찍이 아끼던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배 좌수는 허씨라는 여인을 새어머니로 맞이했다. 허씨는 겉으로는 인자한 미소를 띠었으나, 그 속에는 시기와 탐욕이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녀는 전처의 소생인 장화와 홍련, 특히 빼어난 미모와 곧은 성품으로 칭찬받는 장화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허씨가 아들 장쇠를 낳자 그녀의 숨겨왔던 악독함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장쇠는 어미를 닮아 성질이 포악하고 욕심이 많았는데, 허씨는 그런 아들만 끼고 돌며 장화와 홍련을 하녀보다 못하게 부리고 온갖 구박을 일삼았다. 두 자매는 서로의 여윈 어깨를 감싸 안으며 서러운 눈물을 삼키는 날이 많아졌다. 아버지는 계모의 이간질과 거짓 아양에 눈이 멀어 딸들의 고통을 알아주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장화가 혼인할 나이가 되자, 마을에서 가장 명망 높은 가문에서 혼담이 들어왔다. 이대로 장화가 좋은 집안으로 시집가게 되면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두려워한 허씨는 끔찍한 흉계를 꾸몄다.

어느 깊은 밤, 허씨는 커다란 쥐를 잡아 껍질을 벗기고 붉은 피를 흥건히 묻혀 잠든 장화의 이부자리에 몰래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온 집안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며 소란을 피웠다. 그녀는 배 좌수 앞에 피 묻은 쥐의 시체를 내던지며 울부짖었다.

“보십시오, 영감! 당신의 큰딸이 부정한 짓을 저질러 사내아이를 낙태했습니다. 이 흉측한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우리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배 좌수는 이성을 잃고 크게 노했다. 장화가 눈물로 결백을 호소했지만, 아버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허씨는 한술 더 떠, 이 일을 조용히 덮으려면 장화를 외가에 보냈다가 조용히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고 간악하게 속삭였다. 결국 장화는 아들 장쇠의 손에 이끌려 정든 집을 나서야 했다.

언니의 비참한 죽음을 알 리 없는 홍련은 밤낮으로 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로 지새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에 피투성이가 된 장화가 나타나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알렸다. 꿈에서 깬 홍련은 슬픔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언니가 빠져 죽은 연못으로 달려가 그 뒤를 따랐다.

그 후, 철산 고을에는 기이하고 무서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새로 부임하는 부사마다 첫날 밤에 의문의 급사를 당하는 것이었다. 흉흉한 소문이 나라 전체에 퍼지자 누구도 철산 부사 자리에 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담력이 세고 의기가 넘치는 한 젊은 선비가 부사로 자원하여 부임했다.

부임 첫날 밤, 부사는 관복을 벗지 않고 촛불을 환히 밝힌 채 잠자리에 들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자정이 넘자, 싸늘한 음풍(陰風)과 함께 머리를 풀어헤친 두 명의 소복 입은 여인이 귀기 서린 모습으로 나타났다. 바로 장화와 홍련의 원혼이었다.

부사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그녀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부사는 두 원혼에게 내일 날이 밝는 대로 한을 풀어주겠노라 약속했다.

다음 날, 부사는 즉시 배 좌수와 허씨, 그리고 장쇠를 잡아들였다. 허씨와 장쇠는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며 뻔뻔한 거짓을 늘어놓았다. 이에 부사는 장화의 시신을 찾기 위해 연못의 물을 모두 빼내도록 명했다. 물이 빠지자 놀랍게도 조금도 썩지 않은 장화의 시신이 떠올랐고, 그 옆에는 홍련의 시신도 나란히 누워 있었다.

부사가 증거를 들이밀어도 허씨가 발뺌하자, 부사는 하늘의 심판에 맡기겠다며 허씨와 장쇠를 연못 가운데 세웠다. 그러자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쳐 두 모자를 그 자리에서 불태워 죽였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배 좌수는 큰 충격과 죄책감 속에 법에 따라 귀양을 가게 되었다.

마침내 억울한 누명을 벗은 장화와 홍련의 원혼은 부사에게 감사를 표하고 편안히 하늘로 올라갔다. 마을 사람들은 두 자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연못가에 사당을 지어주었다. 훗날 귀양에서 풀려난 배 좌수가 다시 장가를 들어 쌍둥이 딸을 낳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장화와 홍련이 다시 태어난 듯하여 똑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밀양 아랑, 대나무 숲에 흩어진 순결

조선 명종 시절, 경상도 밀양 땅에 어여쁜 딸을 둔 부사가 부임했다. 그의 딸 '아랑'은 빼어난 미모와 고운 심성으로 뭇 사내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아랑은 정숙하여 외간 남자를 가까이하지 않고, 오직 책 읽기와 달 구경을 낙으로 삼는 규수였다.

그런 아랑을 남몰래 연모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관아의 통인(通引)으로 일하는 '주기'라는 사내였다. 신분의 차이 때문에 감히 아랑에게 다가설 수 없었던 그는 비뚤어진 욕망을 품게 되었다. 주기는 아랑의 유모를 돈으로 매수하여 흉계를 꾸몄다.

어느 맑은 보름날 밤, 유모는 아랑을 꾀어냈다. "아가씨, 오늘 밤 영남루의 달빛이 천하제일이라 하옵니다. 잠시 바람을 쐬고 오시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평소 달 구경을 좋아했던 아랑은 유모의 말에 속아 아무런 의심 없이 영남루로 향했다.

아름다운 달빛에 취해 시를 읊던 아랑의 앞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주기가 짐승 같은 눈을 번뜩이며 나타났다. 그는 아랑을 겁탈하려 달려들었다. 아랑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순결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주기의 손길을 뿌리치고 정조를 지켰다.

그러나 아랑의 거센 저항에 당황하고 분노한 주기는 결국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는 품에 숨겨두었던 비수로 아랑의 가슴을 찔러 무참히 살해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린 주기는 자신의 죄가 드러날까 두려워, 아랑의 시신을 대나무 숲 깊은 곳에 유기했다.

그날 이후, 밀양에는 괴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새로 부임하는 부사마다 첫날 밤,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되는 끔찍한 일이 반복된 것이다. "밀양 부사는 하룻밤짜리"라는 흉흉한 말이 퍼지자, 더 이상 누구도 그 죽음의 자리에 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사'라는 담대하고 의로운 젊은이가 밀양 부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흉흉한 소문을 익히 들었던 그는 부임 첫날 밤, 잠자리에 들지 않고 촛불을 대낮같이 밝힌 채 책상에 앉아 묵묵히 책을 읽었다.

밤이 깊어 자정이 되자, 등불이 스산하게 흔들리고 방문이 소리 없이 스르르 열렸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 가슴에 비수를 꽂은 처녀 귀신이 원한에 찬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바로 아랑의 원혼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혼절했겠지만, 이상사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네 모습이 흉측하니, 사람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억울한 사연을 고하라."

그의 대담함에 놀란 아랑의 원혼은 잠시 사라졌다가, 이내 생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흐느끼며 자신의 기구하고 억울한 죽음을 모두 털어놓았다.

"사또, 부디 저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저를 죽인 자는 관아의 통인 주기이옵니다."

사연을 모두 들은 이상사는 날이 밝는 대로 범인을 잡아 그녀의 한을 풀어주겠노라 약속했다. 아랑의 원혼은 그제야 감사의 절을 올리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이상사는 즉시 관아의 모든 관졸을 뜰에 모이게 했다. 그는 엄숙하게 말했다. "어젯밤, 억울하게 죽은 아랑의 혼이 나를 찾아왔다. 그녀가 말하길, 자신의 원한은 나비가 되어 범인의 머리 위에 앉아 갚을 것이라 하였다."

그 순간, 어디선가 흰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어 관졸들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관졸들은 숨을 죽였고, 오직 한 사내, 주기의 얼굴만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마침내 나비는 공포에 질린 주기의 갓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이상사는 그 자리에서 주기를 잡아들여 추궁했고, 그는 결국 자신의 모든 죄를 자백했다. 법에 따라 주기는 처형되었고, 이상사는 아랑의 시신을 찾아내어 예를 갖춰 장사를 지내주었다.

그 후 밀양에는 더 이상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아랑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영남루 옆에 '아랑각'이라는 사당을 짓고 그녀의 굳은 절개를 기렸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밀양 지방의 대표적인 설화로 전해지며, 억울한 죽음과 그 한을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얼굴 없는 손님, 달걀귀신

깊은 산속을 홀로 넘어가던 한 선비가 있었다. 봇짐을 짊어지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이었다. 해도 저물어 숲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짐승의 울음소리가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며칠째 노숙으로 지쳐 있던 선비는 멀리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을 발견하고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기뻐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산 중턱에 외딴 초가집 한 채가 위태롭게 서 있었다. 선비는 조심스럽게 사립문을 열고 인기척을 냈다."이리 오너라! 길 잃은 과객인데, 하룻밤만 묵어갈 수 있겠소?"

안에서 삐걱,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백발이 성성한 노파가 등잔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노파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선비를 안으로 안내했다. 집 안은 몹시 누추했고, 음습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맹수와 추위를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선비는 안도했다.

"고맙습니다, 할머님.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선비가 공손히 말했으나, 노파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부엌으로 가 저녁을 준비할 뿐이었다. '산속에 홀로 살아 말수가 없으신가 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선비는 노파가 차려준 소박한 밥상을 물리고는 피곤함에 자리에 누웠다.

그날 밤, 잠결에 이상한 소리를 듣고 선비는 눈을 떴다. 옆방에서 노파가 누군가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였다. 이 깊은 산중에 다른 사람이 더 있었단 말인가. 궁금증이 생긴 선비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문틈으로 옆방을 엿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방 안에는 노파와 젊은 여인이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여인의 어깨가 이상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마치 울고 있는 것처럼. 선비는 안타까운 마음에 조금 더 자세히 보려고 몸을 기울였다. 그 순간, 노파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선비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노파의 얼굴에는 눈, 코, 입이 없었다. 마치 거대한 달걀처럼 매끈한 살덩이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겁에 질린 선비가 뒷걸음치자, 흐느끼던 젊은 여인도 천천히 몸을 돌렸다.

"...제 얼굴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여인의 목소리는 고왔지만, 그 얼굴 역시 아무것도 없는 매끈한 평면이었다. 선비는 혼비백산하여 그 집에서 뛰쳐나왔다. 넘어져 뒹굴고 나뭇가지에 살이 찢기는 것도 모른 채, 그는 미친 듯이 어둠 속을 헤치며 산을 내려왔다.

얼마나 달렸을까, 동이 틀 무렵 선비는 겨우 산 아래 민가를 발견하고는 거의 기다시피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나온 집주인은 선비의 흉측한 몰골과 공포에 질린 눈을 보고는 크게 놀라 그를 안으로 들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리 혼이 나간 모습이오?"

선비는 따뜻한 물 한잔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숨을 헐떡이며 간밤에 겪은 끔찍한 일을 털어놓았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 모녀의 이야기. 그 기괴하고 섬뜩한 모습에 대한 묘사를 들은 집주인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윽고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허허, 나 원 참... 세상에 별일을 다 겪으셨구려."

집주인은 동정 어린 눈으로 선비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선비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안도감에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집주인은 껄껄 웃으며 선비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래서, 그 얼굴 없는 것들이 이렇게 생겼다는 말이오?"

선비의 눈앞에서, 집주인의 얼굴이 스르르 녹아내리듯 눈, 코, 입이 사라지며 매끈한 달걀귀신으로 변해 있었다. 선비는 그 자리에서 까무러쳐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고 한다.